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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은, 마트료시카

이사를 했다

주전자엔 새 물이 끓고 있다

익숙한 데서 옮겨와

유리잔 몇 개는 꽃병이 됐다

문득 궁금했고 자주 궁금했던 친구들과 앉을

식탁엔 꽃병을 두었다 꽃도 말도 정성으로

고르고 묶으면 화사한 자리가 되어서

곁이란 말이 볕이란 말처럼 따뜻한 데라서

홀로는 희미한 것들도 함께이면 선명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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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이현승, 가로등을 끄는 사람

새벽 다섯시는 외로움과 피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
외로워서 냉장고를 열거나
관 속 같은 잠으로 다이빙을 해야 한다.

만약 외로운데 피곤하거나
피곤하지도 외롭지도 않다면 우리는
산책로의 가로등들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보거나
갑작스레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잠시 뒤엔 불 꺼져 깜깜한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암 환자가 보일 것이다.
구석으로 숨어든 어둠의 끄트머리를 할퀴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외로움과 피곤과 배고픔과 살고 싶음이 집약된,
더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열정으로 고양된 새벽,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다섯시
저기 어디 가로등을 끄는 사람이 있다.
고요히 다섯시의 눈을 감기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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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황인찬, 우리는 시를 사랑해 113회 메일 중

  (..) 저는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는데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온 친구를 보며,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청첩장을 받기 위해 친구를 만났던 날, 친구에게 결혼을 결심한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서, 라고 답해주었지요. 질투가 날 만큼 멋있는 이유였습니다. 스스로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삶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했다는 뜻이니까요. 그건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무엇인가를 바라는 대신, 내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을 정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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