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가로등을 끄는 사람
새벽 다섯시는 외로움과 피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
외로워서 냉장고를 열거나
관 속 같은 잠으로 다이빙을 해야 한다.
만약 외로운데 피곤하거나
피곤하지도 외롭지도 않다면 우리는
산책로의 가로등들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보거나
갑작스레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잠시 뒤엔 불 꺼져 깜깜한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암 환자가 보일 것이다.
구석으로 숨어든 어둠의 끄트머리를 할퀴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외로움과 피곤과 배고픔과 살고 싶음이 집약된,
더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열정으로 고양된 새벽,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다섯시
저기 어디 가로등을 끄는 사람이 있다.
고요히 다섯시의 눈을 감기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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