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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나의 싸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

(사진 출처 :  고요 @iw0ntbe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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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조용미, 슬픔의 연대기

 아, 어쩌지 일기를 마저 없애버리는 걸 깜박했다 머리에서 끈적한 것이 흘러내리네 목은 아마 꺾어진 것 같은데 어쩌지 삭제하지 못한 최근의 문서들이 하필 이 순간에 떠오르다니

 누가 그걸 읽으면 안 되는데, 다시 화면을 거꾸로 돌려 저 위로 휙 날아오를 수 있다면 다 말끔하게 처리하고 올텐데, 아 그나저나 누가 나를 빨리 발견이라도 하면 어쩌지

 내가 보았던 죽은 사람들은 정말 죽었던 것일까 그들은 왜 내게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어슬렁거리기만 하다 돌아간 걸까 나는 조용히 이대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

 아, 누가 내 일기를 좀 불태워다오 빈틈없는 죽음이란 없는 거구나 허술한 죽음만이 죽음 같구나 아, 어쩌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 말을 너무 오래 아껴두었구나

 그토록 오래 당신을 사랑했던 나를 이제야 이해하겠다 이제야 용서할 수 있겠다 그대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사랑하기로 했구나 삶이여, 이제 나는 없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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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조용미,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빈소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 것 같다

 며칠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읽지 못할 긴 편지를 쓴 것도 같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천천히

 멱목을 덮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길고 따뜻했던 손가락을 느끼며

 잡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었으며 우리의 다짐은 얼마나 위태로웠으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초라했는지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이곳에서

 

 당신과 나를 위해 만들어진 짧은 세계를

 의심하느라

 

 나는 아직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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