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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새의 위치

  날아오르는 새는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는지,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겨울 코트엔 온통 깃털이 묻고,

  공중에서 죽어가는 새는 중력을 거절하지 않네.

  우리는 죽은 새처럼 말이 없네.

  나는 너를 공기처럼 껴안아야지. 헐거워져서 팔이 빠지고, 헐거워져서 다리가 빠져야지.

  나는 나를 줄줄 흘리고 다녀야지. 나는 조심 같은 건 할 수 없고, 나는 노력 같은 건 할 수 없네. 오늘은 내내 어제 오전 같고, 어제 오후 같고,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오늘은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오늘은 발자국이 생기기에 얼마나 좋은 날인지,

  사람들은 전부 발자국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네. 춥다, 춥다, 그러면서 땅만 보며 걸어다니네.

  눈 내리는 소리는 안 들리는데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났다.

  우리는 눈 내리는 소리처럼 말하자. 나는 너한테 안 들리는 소리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를 두 손에 보듬고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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