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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별이름 작명소

고단한 잠은 멀리 있고

나를 찾지 못한 잠은

누구의 호흡으로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있을까

 

나는 아직

아름다운 운율에 대한 정의를

잠든 그의 숨소리라고 기록한다

 

두 눈을 꼭 감으면 잠이 올 거야, 없는 그가 다독이며 말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두 눈을 꼭 감으면 감을수록

떠도는 별들이

동공의 어두운 웅덩이를 찾아와 유성우(流星雨)로 내렸다

 

밤새 유성우로 내리는 별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면

차가운 호흡과

별들이 돌아가는 시간이 꼭 알맞았다

 

오랫동안 성황을 이룰, 별이름 작명소

 

잠을 설친 새벽이 눈뜰 때마다

검은 액자 속 한 사람과 마주쳤다

날마다 희미해지는 연습을 하는지

명도를 잃어가는 사진 한 장

 

별이 태어나는 차가운 먼지구름 속

아무도 그가 먼지구름에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해주지 않았다

어떤 별의 소멸은

아직 없는 별을 산란시킬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입술을 조용히 짓이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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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바람의 지문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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