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여름과 겨울 사이, 그리고 겨울과 여름 사이에는 계간 소식을 적곤 한다. 날씨가 좋아서, 바람도 좋고 공기도 좋고, 걷고 있자면 살아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서. 여전히 힘든 일은 많고 하루하루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만 이 계절에는 바람 한 켠 들일 틈새가 슬그머니 마음에 생기기 마련이다.
틈새에는 바람도 들고 마음도 든다. 미뤄두었던 사랑의 말들이 틈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계절. 이런 날씨에는 같이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데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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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OJ와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OJ는 영국에서 온 영어 선생님인데, 다음 주부터는 다른 선생님이 온다고 한다. 오늘로 두 번째 시간이고 겨우 이틀차인데 깜짝 놀랄 정도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영국식 발음(특별히 어떤 악센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과 추임새, 대화의 스타일 모두 첫 만남부터 대번에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지막이라니.. .. 처음이자 마지막 1:1 세션의 지원자를 받는다기에 얼른 손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되어 본인도 아쉽다고 했고, 나는 당신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했고, 고맙다는 답을 듣고. OJ는 첫 시간에 언어는 도구이므로 당신이 편한 방식으로 말하면 되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건 수용 가능하다고acceptable 했다. 그 말이 참 인상 깊었다. 언어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이고 당신은 당신의 말을 하면 된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타인과 대화를 나눈다는 건 사실 대단히 즐거운 일이지 않나? 이런 감상은 어쩌면 전날 노벨문학상으로 한차례 문학 감수성을 뒤흔들어 놓은 한강 작가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 그는 내 영어에 대해 "seriously, not fluttered," 이미 당신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모든 이유를 갖췄다고 했고, personality에 대한 칭찬으로 마음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사실상 자진 철거 같기는 하지만.. .. 대화가 끝났는데 여운이 남아 귀가하는 내내 연락처를 물어볼걸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나 대화가 점점 더 귀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칭찬에 넘어간 거 아니냐며 얘를 어쩌나 하는 눈을 하셨지만 아니 그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좋아하는 계절에 잊어버리기 아까운 기억이라 몇 자 남겨둔다. 남은 가을이 며칠이나 될 지 모르겠지만 온 마음으로 만끽하며 보내야지. 가을이다.